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The past is just the past

노인과 버스

writing_cyn 2022. 8. 12. 01:59

늦게 일어난 건 아니었다. 씻고 깔끔히 보이게 얼굴을 단장하고, 배고프지 않게 밥도 먹고 잠시 숨을 돌리니 11시였다. 바깥공기는 겨울 같지 않게 따뜻했다. 햇살도 따사로웠다. 사람들은 바빠 보이지 않았지만, 도로 위의 차들은 매우 바쁘게 내 앞을 오고 갔다. 11시, 혹시, 만약에라도 오지 않을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렸다. 아마도 여기서 버스를 타는 걸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. 멀뚱멀뚱 주민센터 앞에 서있는 나를, 지나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쳐다봤다. 난 아무렇지 않게 - 난 '뭔가' 를 기다리는 중이에요 - 라는 듯 서있었지만, 아직까지도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건 편한 일은 아니다. 11시 10분, 버스가 오는 도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. 오고 가는 수많은 차들과 버스들, 그 틈에 내가 탈 버스가 혹시라도 날 지나칠까 봐, 도로로 잔뜩 몸을 내밀고 살폈다. 작지도 크지도 않은 봉고차가 내 손짓을 보고 멈춰 섰다. 면접장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, 버스의 문이 열리자 왜 이렇게 떨리는지. 차 안의 대여섯의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바라볼 때의 긴장감, 난 그게 끔찍하게 싫다. 그래도 '안녕하세요' 씩씩하게 인사하고 (물론 기사님께) 적당히 괜찮을 거 같은 자리에 착석한다. 

의문점 1. 평일 11시에 도서관 셔틀버스에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가? 

의문점 2. 왜 그 사람들은 다 할머니, 할아버지 인가? 

의문점 3. 이 사람들은 정말 도서관으로 가는 걸까? 

의문점 4. 내가 버스를 잘못 탔나?

내 의문과는 상관없이 버스는 목적지로 계속 간다. 계속.....

정거장마다 또 다른 노인들이 탄다. 노인들은 서로 잘 아는 듯 보였다. 난 왠지 모를 소외감을 느꼈다. 버스가 어떤 정거장에 도착하자, 기다렸다는 듯 모든 노인들이 일제히, 일사불란하게 내리기 시작한다. 갑자기 내 눈이 커지면서 심장은 빨리 뛰기 시작한다. 어느 면으로 봐서도 도서관은 아닌 것 같은데..... 모두 내린다. 혹시 여기가 도서관이라서 모두 내리는데 나만 안 내리고 계속 앉아있으면 어떻게 될까? 난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곧 실행에 옮겼다. 

'여기 도서관이에요?'.....

내 질문은, 공기 중으로 흩어지면서 내 눈에 노인들이 더 빨리 버스에서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. 

'할아버지! 여기 도서관이에요?!' 난 내 의자 옆을 지나는 할아버지에게 다시 '크게' 물어봤다. 할아버지는 '어?' 하더니 내 질문을 한 번 더 듣고 말했다. 

'아, 도서관 한참 가야 돼!' 할아버지는 쿨하게 내렸다. 꽉 찬 봉고차가 나 빼고 텅텅 비었다.

-역시 도서관 가는 게 아니었군.

난 자리가 맘에 들지 않아 제일 뒷좌석 중에서도 구석으로 옮겼다.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노인들이 다 내린 이 정거장에서 또 다른 노인들이 올라탔다. 이번엔 더 많았다. 엄청 많았다. 들어오는 노인들이 끊이지 않았다. 나는 식은땀이 나려고 했다.

의문점 5. 이 수많은 노인들 가운데 내가 진정으로 앉아있어도 되는 걸까? 

노인들은 계속 들어왔고 봉고차의 중간 좌석을 내려서 앉고도 서서 가야 할 정도였다. 자리가 점점 없어지니, 뒤에 타는 할머니들이 나를 쳐다봤다. 난,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음악을 들으며 모른 척 딴 곳을 봤다. 노인들이 버스에서 서서 가는 것은 위험하니까 비켜줄 수 있다면 비켜주고 싶었다. 자리를 내주기 위해선 벌떡 일어나, '할머니, 여기 앉으세요'라고 말한 뒤, 할아버지 4명을 제치고 가야 했다. 상상을 해보았다..... 난 그러고 싶지 않았고, 계속 모른 척했다. 아줌마로 추정되는 한 분이 서시고,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. 다행히 내 주변에 앉아있던 노인들은 내가 일어나 자리를 비켜준다며 소란 아닌 소란을 피우기를 크게 바라지 않는 것 같았다. 두, 세 정거장을 지난 뒤, 버스는 정차했고 5명 정도가 내리고 2명 정도가 더 탔다. 다행히 이제 모두 앉아 갈 수 있었다. 왜 내가 이 상황을 안도해야 되는지 모르겠지만, 마음이 놓였다. 버스는 계속 갔다. 

난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의 막 피운 담배냄새와 주변 노인들의 특유의 냄새를 맡으며, 난 노인이 되면 꼭 차를 타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, 멋들어지게 차를 타는 노인들과 어떻게든지 도서관은 가지 않지만 도서관 셔틀버스는 타야겠는 이 노인들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. 이 노인들이 과거에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랑을 하고 고난을 겪었는지 난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, 그들의 겉모습을 보며 상상할 수 있었다. 아마 무척 힘들었겠지. 몸을 가누기 힘든 사람,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,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... 모두 힘든 시간을 지내온 결과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. 

버스는 이제 도심을 벗어나 주거단지가 형성된 산 비슷한 곳으로 들어갔다. 노인들이 웅성댄다. 뭔가 도서관 같은 건물이 있는 곳 근처에 버스가 정차했다. 노인들이 우르르 내린다. 정말 말 그대로 우르르 내린다. 난 또 조바심이 난다. 여기가 도서관인가? 노인들이 서둘러 내리는 통에 밖의 건물이 도서관인지 뭔지 보이지가 않는다. 

'여기 도서관이에요?' 내리려고 일어나는 옆의 할아버지에게 물어본다. 할아버지는 대답이 없다!

다시 '여기 도서관이에요??' 할아버지는, '도서관?... 난 잘 모르겠는데'.....

뎅, 한 대 맞은 기분. 벙쪄서 안 내리고 가만있으니, 나를 포함해 3명을 태운 버스가 다시 출발한다. 버스는 오르막으로 올라간다. 2 정거장을 지나니 - 도서관 입구 -라고 대놓고 알려주는 도서관 입구로 버스가 들어간다. 버스가 적당한 곳에 정차하고 2명이 차례대로 내린 뒤, 마지막으로 내가 내린다. 

'감사합니다!'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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